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시인들93

■ 류진 시인의 시 ■ 우르비캉드의 광기 & 6월은 호국의 달 & 비스마르크 추격전 & 마죽 무서워 &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우르비캉드의 광기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착지했는데 목성일 때  당겼는데 빗줄기일 때   나무떼가 철컥철컥 갑옷일 때   마음인데 차가운 햄일 때  물병 속의 물결인데 빠졌을 때   청군이 이기기로 했습니다   사냥꾼이 구름을 쏠 때  아이들이 후드득 떨어질 때   앞니에 노을이 안 지워질 때  눈물인데 돗자리가 반짝일 때   죽었는데 김밥일 때  준비하시고 개미는 응원입니다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눈알을 확 파버렸어야지 6월은 호국의 달     잘됐네  나라를 지켜서   나라 지켜서 잘됐네   잘됐어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2024. 6. 11.
■ 박형준 시인의 시 ■ 달나라의 돌 &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 불광천 & 교각 & 백년 도마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 텐데 달나라의 돌     아라비아에 달나라의 돌이 있다  그 돌 속에 하얀 점이 있어  달이 커지면 점이 커지고  달이 줄어들면 점이 줄어든다*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 텐데  사물마다 숨어 있는 달을  꺼낼 수 있을 텐데   당신과 늪가에 있는 샘을 보러 간 날  샘물 속에서 울려나오는 깊은 울림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雪]이  어느새 꽃이 되어 떨어져  샘의 물방울에 썩어간다  그때 내게 사랑이 왔다   마음속에 있는 샘의 돌  그 돌 속 하얀 점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동안  나는 늪가에서 초승달이.. 2024. 6. 9.
■ 심은섭 시인의 시 ■ 백일홍나무 아래에서의 고백 & 아내& Y셔츠 두 번째 단추을 끼울 때 & 경주 김씨 달안의 딸 & 7번 국도 백일홍나무 아래에서의 고백     해당되는 것에 O표 하시오   순종이다 흰 그림자이고 새벽에 배달된 과즙이다 흔들려야 정오를 기억하는 시계추다 수평선에 걸터앉아 인간의 비극의 기원이 어딘지를 찾는 0시의 태양이다 겨울 동안 찬바람에 살찐 얼음일 뿐이다 기침하는 사랑방으로 보낸 장문의 편지이고, 터진 슬픔을 꿰매는 상처의 바늘이다막다른 골목의 계단을 쌓는 미장공이다 어는 날엔 살아있는 사육신이었고, 꽃을 피우는 일이 혁명이 아니라고 귀를 잘라버린 봄이다 고독한 오후를 되새김길하는 낭만의 양 떼, 단추처럼 붙어사는 나는 백일홍나무 아레에서 하늘을 쳐다본다   어느 곳 하나 O표 할 데 없다    아내     얼굴은 하얀 목련이지만 뒷모습은 사월 초파일이다 나와 함께 한 방향으로 기관총을 쏘는 총잡이다 내가.. 2024. 6. 8.
■ 안희연의 세 번째 시집 읽기 ■ 굴뚝의 기분 & 면벽의 유령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풍선 장수의 노래 & 열과(裂果) 너는 어둠 위에 어둠을 껴입고  괜찮아 괜찮아, 늙은 개를 타일러  새 꽃병을 사러 간다 굴뚝의 기분     너는 꽃병을 집어 던진다  그것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네 삶이라는듯이   정오  너는 주저앉고  보란 듯이 태양은 타오른다   너는 모든 것이 너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낀다  의자가 놓여 있는 방식  달력의 속도  못 하나를 잘못 박아서 벽 전체가 엉망이 됐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의 늙은 개는 집요하게 벽을 긁고 있다   거긴 아무것도 없어  칼을 깎는 사과는 없어  찌르면 찌르는 대로  도려내면 도려내는 대로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얼굴은 빗금투성이가 되겠지  돌이켜보면 주저앉는 것도 지겨워서   너는 어둠 위에 어둠을 껴입고  괜찮아 괜찮아, 늙은 개를 타일러  새 꽃병을 사러 간다 .. 2024. 6. 6.